개발자로서 첫 직장 생활을 정말 좋은 곳에서 시작했다. 훌륭한 개발자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았다. 물론 신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회의에 들어가면 분명 한국인들끼리 한국말로 대화하는데 그 내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기술적인 용어든 서비스 도메인 용어든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었고 어떤 논리로 대화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 여유는 점점 사라졌고 안 그래도 낯선 환경과 기술은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쭈구리가 되어갔다. 열등감이 폭발했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비참했다. 조금만 막혀도 낙심이 되고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대로 지식을 소화해낼 리가 없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어보지만 금방 속이 울렁거렸다. 성장? 생존부터 해야 했다.
멘탈의 문제는 누군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에 의지했다. 부정적인 마음이나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잘하건 못하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 내게 힘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믿음을 계속 붙잡았다. 그때마다 조금씩 마음의 평안이 생겼고 해보자는 도전정신이 생겼다. 그렇게 이겨냈고 살아남아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신앙 얘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도움을 받았으면 도움 주신 분께 공을 돌리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험난했고 거칠었던 열등감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정리된 생각이 있다. 사람은 한 명 한 명 누구나 독특하며 특별하다는 것이다. 단지 개발을 잘하냐 못하냐 혹은 뛰어나냐 모자라냐로는 결코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각자가 삶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왜 남과 우리를 계속 비교하며 우리의 현재 위치와 수준을 평가하는 걸까? 자신만의 길을 가다 보니 이따금 비슷한 경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났을 뿐인데 그 사람들과 자신을 계속해서 비교하며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만 들춰내서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것일까?
개발자로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경쟁은 옆 사람과 좋은 자극을 주고받아 함께 발전하는 선에서 유지되어야 하고, 비교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사람은 개발을 잘하냐 못하냐 이것 하나로 결코 평가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건강한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래야 기술이든 뭐든 물고 뜯고 씹고 맛보며 즐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서자.
개발 경험치가 쌓일수록, 혹은 성공한 서비스를 개발했다면, 혹은 어려운 문제를 기술적으로 나이스하게 해결한 적이 여러 번이라면,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경력과 기술력에 자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여야 한다. 자부심이 자만심이 되고 자만심이 교만이 되어,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상향을 하던 성장 그래프는 서서히 꺾이게 된다. 그렇게 나만의 울타리에 갇히기 된다.
이 현상은 신입 개발자나 주니어 개발자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는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시절이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이 현상은 주니어 이상의 개발자에게서 혹은 학부생이라면 고학년에서 잘 나타난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정립된 기준이나 철학, 내재화된 기술력을 갖춘 개발자로 성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내가 정말로 저 사람보다 나은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런 마음을 먹기 시작하는 것은 성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생각과 내 판단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옳을 수가 없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해야 할 때, 아무리 주니어라도,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개발자라도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보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일까? 여기서 내가 밀리면 마치 내 경험과 경력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라서 그런 걸까? 동료가 제안한 다른 의견에, 팀원이 용기 내어 말한 진솔한 피드백에, 때로는 방어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면.. 만약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다면.. 어쩌면 옛날에 성공했던 경험이,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이, 이전의 노력의 열매들이 지금의 내 귀를 막고 나를 가두어 현재의 나의 성장을 발목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한다.
우리는 빈틈 많고 완벽할 수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정하자. 우리는 신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할지라도 그 경지 위의 또 다른 경지는 늘 있기 마련이다.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좋았던 과거든 빛났던 과거든 부족했던 과거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고, 현재는 현재의 상황에서 겸허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지향하는 것이다. 동료를 존중하고 나도 늘 틀릴 수 있음을 견지하는 그런 자세 말이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 길을 가다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저 멀리 늙은 농부가 누렁소 한 마리와 검정소 한 마리로 논을 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농부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누렁소와 검정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늙은 농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황희가 있는 곳까지 와서 황희의 귀에 대고 말했다.
“누렁소가 더 잘하오."
“아니, 그런데 저기서도 말해도 될 것을 뭣하러 여기까지 와서 귀에다 대고 말하는 것이오?"
"소들이 듣지 않소?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남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소?"
늙은 농부의 말을 들은 황희는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큰 가르침을 얻었다며 늙은 농부에게 절을 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 후 황희는 결코 함부로 경솔히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픈 것은 황희 정승의 태도에 있다. 황희는 20대 초반에 벌써 진사시에 급제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 농부의 말을 비웃지 않고 오히려 가르침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무엇이 황희를 성장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개발자로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경쟁은 동료와 좋은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는 선에서 유지되어야 하고, 비교는 사람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선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사람은 유한하며 빈틈이 많고 모순적인 존재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기술이든 뭐든 동료들과 함께 물고 뜯고 씹고 맛보며 즐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같이 어깨를 펴고 함께 당당히 서자.
친구가 비교라는 단어로 된 2행시를 알려줬다.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자칫 잘못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진짜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옆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나 아닐까?